- 언어 통제
- 소진(消盡)
- 김현식, 슬퍼하지 말아요, 우리 처음 만난 날
- 김현식, 그가 가르친 고통
- 물러나고 싶음
- 도망, 분석으로, 수용으로, 즐김이 아니라
- 시간
- 심장, 혹은 마음
- 유식(唯識)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 사태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 그리고 당분간 그리움, 슬픔, 고통, 불안 이런 말도 쓰지 않겠다.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하여 실제로 그런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제자리를 찾고 싶다.
아무런 표현도 하고 싶지 않다. 마냥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
아무 것도 느끼고 싶지 않다. 심지어 숨도 쉬고 싶지 않다.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다. 게다가 싫기까지 하다.
엊그제부터 김현식의 "슬퍼하지 말아요", "우리 처음 만난 날"을 들었다. 이럴 줄 알고 들었던 것일까?
슬퍼하지 말아야지, 혼자라는 것 잘 알고 있으니까. 후회하지 말아야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모두 김현식의 탓이다. 그의 노래에서 이런 감정들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런 감정들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혼란스럽게 죽도록 고통스러웠겠지. 아무튼 이렇게 구체적이고 다양하고 충격적인 고통은 김현식의 탓이다. 나는 예전엔 이런 고통을 몰랐으니까.
자살을 생각한다. 하고 싶다. 이대로 마음의 병이 깊어져 모든 것이 흩어지면 자연히 죽게 될까.
밝은 가을 하늘에 누워있으면, 누군가가 와서 나를 토막내어 쓰레기 통에 버려주면 좋겠다. 마치 폐지(廢紙)를 발기발기 찢어 쓰레기 통에 버리듯이. 마치 시장에서 토막난 동태의, 머리통을 깡통에 담듯이.
'나'는 '나'를 싫어하고 싶다. 도대체 뭐냐, 이 상황은.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는 분석할 어느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극심한 혼란과 함께 믹서에 담겨져 잘게 갈린 것 같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자 해도 도대체 뭘 어떻게 수용해야할 지 모르겠다. 찢어진 비닐 봉지에서 나온 닭죽이라면 어떻게 치우기라도 해보겠지만, 온통 주위를 둘러싼 안개를 어떻게 걷어내겠는가.
아무튼 시간을 얻게 되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이 시간이라는 것을 지나게 될 지는 모르지만. 다시 말해 다시 연락을 하게 될 지, 만나게 될 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이상, 이 시간에 무엇인가 해야겠지. 하지만 도대체 힘을 낼 수가 없다.
나를 맷돌에 갈아다오. 잘 안 갈리면 시간을 조금씩 부어라, 그러면 잘 갈릴 것이다.
아마도 느낌 뿐이겠지만, 심장 부근이 아프다. 따끔한 고통도 아니고, 강하게 눌리는 고통도 아니다. 단지 대충 그 부근이 두리 뭉실하게 아프다. 심장이 똘똘 뭉친 것 같기도 하다.
심장을 도려내면 심장이 있는 곳이 아프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심리학에서 고통은 뇌에서 느끼는 것임을 배웠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그럼에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 고통스러운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는 움직인다. 고통이 세상을 둘러쌌는데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대로다. 이상하게도.
도서관에 갔다. 신경심리학 책을 빌릴 생각이었는데, 불교 관련 책을 빌렸다. 유식입문(唯識入門), 다카사키 지키도(高崎直道). 전부터 읽을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불교적인 생각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어제 보문산성에서 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막상 소리를 지르려니 소리를 못 내겠더라. 그래서 "어이"라고 여러번 외쳤다. 그리고 누구한테 애원이라도 하든 소리를 질렀다. 이름을 불러 봤다. 좋아한다고 외쳐봤다. 메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