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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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

전화를 끊고 이상해졌다. 사실 좋은 시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지금 모순에 빠져있다. 그 사람에겐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헌데 왜 나에겐 내가 가장 중요하지 않나?

그렇다. 나도 믿는다. 만날 때에 헤어질 것을 염려하듯이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비록 헤어짐이나 떠남은 아니지만.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http://weblog.youre.space//vergence/2004/09/0001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