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 기억: 수능성적표를 받은 날
- 기억: 수능시험 보던 날
- 김병모 담임 선생님
엊그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다시 받았다. 성적표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98년 겨울, 그 침침했던 교실에서 받아본, 밝은 희망과 같은 성적표, 그 위에 쓰여있는 점수. 그 느낌... 잘 기억 나지 않지만, 지금 느끼는 것보다는 훨씬 밝았겠지.
사실 그 때에는 막연했다. 앞으로 뭘할지, 수능성적이 어떤 앞날을 만들어 낼지 몰랐으니까. 물론, 수능성적이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 삶의 큰 방향을 정하지도 못했다. 지금 그렇게 생각한다.
총점 백분위 점수가 94.97이다. 다시 말해, 상위 5.03%. 다시 말해, 100명 중 5등. 10000명 중 503등.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그렇게 상위 계급에 속하나? 아니다.
수능성적표를 받은 날이 기억난다. 조금 어두운 교실. 선생님이 교단에 서있고, TV쪽에 있었다. 3학년이 쓰는 건물은 동향이었고, 교실은 북향이었다. TV는 칠판의 서쪽에 있었다. 선생님이 수능성적표를 일일이 나누어 주었는데, 내 성적표를 줄 때에 그랬다.
"예상점수보다 많이 오른 사람도 있고, 떨어진 사람도 있어요"
잠시 후, 내 차례에서
"너 몇점이라고 그랬지? 345.3점이라고 그랬지? 여러분, 쭈욱 올라서 351.3점..."
친구들이 많이 놀랐던 모습, 그리고 부러워하는 눈빛, 웃음이 나온 내 얼굴. 웃음이 계속 나왔다, 주책맞게. 친구들은 점수가 저조해서 다들 죽을 상이었는데. 특히 내 옆에 앉아 있던 정낙원의 모습... 내 앞을 지나가며 선생님이 "입 찢어지겠네..."
나보다 성적이 좋았던 임현준, 장철순. 수능성적은 나보다 안 좋았다. 나중에 이야기 들었는데, 재수를 했다고 한다. 더 좋은 대학 갔겠지. 그리고 나보다 좋은 점수 받은 이경한, 세무대학 갔겠지.
이렇게 회상하고 보니,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 같다. 하긴 벌써 5년도 더 지났구나.
대전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봤다. 그 날 많이 추었다. 으레 그렇지만, 수능시험을 보는 날은 춥다. 언어영역에서 점수가 저조했는데, 그 때에는 별로 못 본 줄 몰랐다. 수학을 보는데, 시험지에 그림이 엉성해서 조잡스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풀기가 더 어려웠다. 수학은 정말 못 봤다는 느낌이었는데, 결과는 좋았다. 과학과 사회는 그저 그랬고, 영어는 쉬웠다. 실제로 점수도 좋게 나왔고.
영어 듣기 문제 풀 때에, 친구 녀석이 보여달라고 했던 것 기억난다. 결국 못 봤지만. 그 친구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번호가 나랑 가까웠는데, 그리고 김씨였던 것 같다. 권순영도 같은 교실에서 시험 봤던 것도 기억난다.
지나간 얘기... 그리고 어린 친구들에게는 앞으로 올 얘기...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김병모 선생님이었다. 3학년 때에 총무를 맡았고, 야간 자율학습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영어 수업 시간에 -모든 수업에 그랬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선생님이 잘 돌보아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충남대학교 가서 심리학 공부하겠다고 하니 성적이 충분하니까 자기 일 도와달라고 했던 것. 그래서 시간 날 때에 교무실 가서 생활 기록부 전산화 하는 것 도와주고 잔심부름 해주고 그랬던 것 기억난다. 그 때 조금 더 공부했으면 지금과 달라졌을 지도 모르는데... 뭐 그건 그런 얘기고.
한번은 교무실에서 일을 도와주는데, 선생님이 내 성적표를 보고 그랬다.
이 성적대로 조금만 더 하면 서울대도 가겠는데. 점수가 꾸준히 오르네. 재수 해보면 어떠냐?
재수 같은 것은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 때에는 꿈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었다. 지금에 와서는 조금 후회된다. 조금 더 했더라면...
사실 고등학교 때에는, 앞으로 잘 살게 되는 것도 좋지만, 현재의 삶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현재에도 어느 정도 편안함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들처럼 코피 터지게 공부를 안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아쉽다. 하지만 어찌하리. 그것이 사실이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