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에 대한 고찰, 시간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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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실 좀 더 긴 시간 동안 정밀한 고찰이 필요할텐데, 갑자기 내키는 마음이 생겨 짧게 써보려한다.

존재에 대한 고찰은 근본적으로 (오직) 시간과 연결지어 행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현상학이나 실존주의 철학에서 다루어진 논의들이 이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정확하게 어떻게 그렇다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선 존재에 대한 고찰을 형이상학적 측면, 사회/계급적 측면에서 보는 것은 이미 고려되었기 때문에 그 외의 다른 시각이 또 필요하다고 본다. 아마도 존재를 시간과 관련해서 다룬 것은 하이데거가 이미 했지만, 지금 쓰는 이 글은 어떻게든 내 생각이다.
존재를 사회/(민족 - 문화, 연대감, 공동체 등)의 측면에서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써보려한다. 우선은 시간에 대해서.

(다른 용어를 쓸 수도 있겠는데, 머리 속에서 지금 떠오르는 단어는 이것이다) 경험의 장(場)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살고 있는 이 공간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공간은 하나의 연속된 공간이다. 경험하는 이 공간은 3차원이다. 그리고 경험에 비추어볼 때에, 연속되어있다. 컴퓨터 게임처럼 눈을 감았다 뜨면 불연속적인 공간이 나타나는 일은 있지 않다. 마치 영화 Matrix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전혀 다른 공간으로 가게 되는 일이, 경험 상의 현실에서는 없다. 아마도 이것은 경험의 부족/한계/제약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것을 완전 불변한 진리로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험할 가능성이 적은 것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 우주 저편에 불연속된 공간대(帶)가 있다고 하더라도 경험할 가능성이 적으니 유효하지 않다. 미래에 그런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면, 지금 이 생각은 바뀌어야할 것이다.

공간에 질료가 존재하고, 질료가 존재하여 공간이다. 질료가 변화한다. 공간도 변화한다. 질료가 변화하는 것과 공간이 변화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오직 시간 내에서 가능하다. 시간에 대해 미분을 가정해보자. 찰나적인 시간 동안의 공간과 질료를 보자. 그것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스냅샷을 찍어 놓은 것과 같다.
다시 말해, 변화는 오직 시간과 관련이 있다. 변화의 대상은 공간과 질료이고, 공간과 질료는 하나이다. 그래서 결국 남는 것은 시간과 변화하는 존재일 뿐이다.

때때로 존재에 대해 고려할 때에, 그리고 존재를 구성하는 것을 가정할 때엔, 공간을 시간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축(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존재를 질료의 독립적인 무더기로 볼 수 있다. 이 때에만 공간과 시간에 관련지어 존재를 - 다시 말해 질료를 -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의 예는, 같은 존재가 여럿 있을 수 있는가를 살펴볼 때이다. 어느 질료도 같은 시간/공간에 여럿이 존재할 수 없다. 있다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귀신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겹쳐 있는 상황이 가능할 것이다.

나중에 공부를 더 해야겠다. 가능하다면 대학원에서.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http://weblog.youre.space//vergence/2004/08/0001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