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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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길에 안용식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나를 못 알아본 듯이 지나쳐 갔지만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모자를 눌러써서 얼굴이 많이 가리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조금 후줄근한 바지와 볼품 없는 웃옷, 가방에 매달린 떨그럭 거리는 컵. 초라하게 느껴졌지만, 그런 것에 태연한 자연스러운 느낌이 와 닿았다.

몇발짝 앞에서 선생님인 것을 알아차렸을 때에, 그 자리에 멈추었다. 히지만 선생님은 계속 걸었다. 나는 뒷모습을 보았고, 그 잠시 동안 많은 갈등을 했다. 선생님을 부를까, 부르면 뭐라고 인사를 할까, 무슨 이야기를 할까, 당연히 반기겠지, 머리가 많이 자라서 지저분한데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지금 나의 상황이 더 초라하지 않나... 결국 초초히 걸어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꺾어진 길 모퉁이에서 놓쳐버렸다.

그 많은 생각 중에,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나에 대한 부끄러움, 현재 나의 모습. 나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나? 나태하지 않은가. 나는 언제나 부지런하고 싶다. 몸을 자꾸 다그쳐서 무엇이라도 얼른 이루어 놓고 싶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안용식 선생님이 해준 말이 기억난다. 나를 죽여야 내가 산다. 이 말을 들은 중학교 3학년 때,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큰 힘이 된 말이다. 때때로 그리고 필요할 때에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었고, 상황에 맞게 적용되었다. 지금은 이 말이, 나의 욕구를 자제하고, 노력할 때에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죽을만큼 노력하면 당연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당연히 해야할, 마땅한 생각이 아닌 것을 했다. 증오하고 싶었고, 분노하고 싶었고, 파괴하고 싶었고, 괴롭히고 싶었다. 기대에 실망으로 답하고 싶었다.
중학교 3학년 때에, 외국어 고등학교에 지원해보라는 선생님의 권유를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어린 나이의 나에게, 타인에게 할 수 있는 일종의 공격적인 행동은 그런 것이었다. 기대에 실망으로 답하는 것.
시간이 지나, 지금은 미안함을 느낀다. 그런 생각은 "자연히" 할 생각에 속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하지 말아야할 생각들이었다.

근래 나의 공부가 많이 더디다. 게으른 탓이다. 상당히 위기감을 느낀다. 이렇게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나, 모두 지나버리면 어떡하지, 아직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자랑스럽게 지금의 나는 어떠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별로 그렇지 못하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아마도 나이가 30이 넘으면. 하지만 마음은 조급하다.

공부에 게으름을 피우면서, 점점 향락(享樂)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퇴폐(頹廢)적이거나 소모(消耗)적인 향락은 아니고).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여유(餘裕)를 즐기고 있다. 그 여유는 사실, 여유가 아니고 나태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무엇을 하든, 어떻게 되든 시간은 갈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괴로움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자연과 가까이에서 소요(逍遙)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나태함으로 이끈다.

약간의 충격이 있다. 근래에 나태함을 모두 날리고 부지런해져야겠다. 노력하겠다. 나중에 선생님을 다시 마주치게 되면, 주저하지 않도록.

안용식 선생님을 그렇게 스쳐간 것이 못내 아쉽다.
기억이 난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연합 고사. 겨울이 가까워져 난로를 땠다. 그 때에도 대전 중학교는 한참 조개탄을 때었다.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이 자리를 바꾸라고 했다. 나는 맨 앞줄에 앉아 있었는데, 세번째 줄로 가라는 것이었다. 난로 바로 옆자리라서 많이 더웠다. 알고 봤더니 진학에 대해 상의하려고 어머니와 담임 선생님인 안용식 선생님이 만났는데, 어머니께서 내가 추위를 많이 타서 걱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바로 그 말에 선생님이 자리를 바꾸어 준 것이다. 물론, 한 학생에게 그런 배려를 한다는 것은 공평에서 벗어난다고 볼 수 있지만, 이미 자리 배정은 불공평한 것이었다.

또, 안용식 선생님은 스스로 청소를 했다. 내가 맨 앞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교탁이나 앞문 가까이에 있었다(다른 첫번째 줄에 앉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점심을 먹고 공부하고 있으면, 선생님이 비를 들고 교실 이곳 저곳을 청소 했다. 내 자리의 바로 앞이나, 문 옆도. 선생님이 청소 하는 것이 보기 불편해서 내가 하겠다고 말씀드리면, 공부하는데 집중하라고 하셨다. 그 때 선생님에게서 참 따뜻함을 느꼈다. 뿐만아니라 다른 선생에게서 느껴지는 권위나 딱딱한 느낌도 없었다. 나는 그 느낌을 기억한다.

산에서 선생님을 그대로 보내면서, 갑자기 철이와 메텔이 헤어질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그 것을 보았을 때의 느낌도. '아마 이런 것이었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스쳐버리면, 이내 서로의 기억 속에서는 더욱 멀어지겠지. 지금 잠시 붙잡아 짧게라도 이야기를 나누면, 시간의 허무함에서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둘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 만났을 때에 느낄 낯선 느낌은 더욱 커지겠지.
시간의 흐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기억, 존재의 사라짐. 그런 것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부디 멀지 않은 날에, 즐겁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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