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 꿈

  • 그냥 꿈

명절 날이어서 음식을 이것저것 차렸다. 어떤 명절인지는 모르겠다. 날이 춥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설은 아닌 것 같다. 여름 옷 차림은 아니고 아마도 추석 정도 되지 않을까 지금 추측한다.
엄마가 어떤 아주머니에게 밥을 차려 주라고 했다. 영 내키지 않는데 밥을 차려 줬다. 그 장소는 버스 정류장이었다. 학교에 가기위해 130번 버스를 타는 정류장. 그리고 나의 집은 문창동의 그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음식을 차리는데, 실제로는 먼 그 거리가 무시되었다. 내가 뚝딱 밥을 차려 주었다, 이상하게도 땅 바닥에. 아주머니가 밥을 먹었다, 조금 천천히. 그러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내심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있었다. 딱히 뭐가 싫다는 것은 아니었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마련한 음식 중에는 물김치가 있었다. 실생활에서, 어제 엄마가 만든 물김치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물김치가 담긴 병도 같았다. 앵두 술을 담아 놓을 법한 조금 투박한 유리 병과 빨간 플라스틱 마게. 약간 붉은 색의 김칫국물.
그렇게 버스를 기다렸는데, 버스가 지나갔다, 아마도 두번. 아마도 내가 기다리던 버스는 130번 같다. 엄마는 다른 버스를 타고 간 것 같다. 혹은 엄마는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지 않은 것 같다.

아주머니가 버스를 타고 갔다. 그리고 밥 먹은 것들을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정류장 옆의, 충무 체육관 쪽으로 난 길으로 몇 걸음 갔다가 돌아오니 그릇과 음식이 없었다. 무엇을 하려고 걸어갔는지 모르겠다. 정류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사라졌고, 대신 낯선 아가씨가 있었다. 아가씨에게 묻자, 아가씨가 그 것들을 자기가 갖고 있다고 했다. 그리곤 정류장에서 그 집, 실생활에서 정류장에서 충무 체육관 쪽으로 난 길에서 왼쪽에 감나무가 있는 집, 앞에 엄청나게 많은 짐 안에서 그릇과 그 김치병을 꺼냈다. 꺼내는 와중에 김치가 담긴 병의 뚜껑이 살짝 열려 국물이 주륵 새었다. 그 아가씨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헌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아주머니가 이미 갔고, 그 아주머니가 아가씨에게 맏기었을 리가 없는데, 왜 당연히 그 아주머니가 맏겼을 것이라고 믿었을까? 전혀 그 아가씨를 의심하지 않았다.
많은 짐들을 보아 대단히 부유한 것 같았다. 그 아가씨가 그릇과 음식을 꺼내기 위해 꺼낸 첫번째 박스는, 명절음식이라고 쓰여 있던 것 같다. 그 아가씨가 많은 짐들을 가지고, 아마도 그 감나무 집에 이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릇과 음식을 챙기고 이사 하는 것 도와줄지 물었다. 그 아가씨가 대단히 좋아했는데, 내 마음은 조금 갈등을 하고 있었다. 예쁜 아가씨라 마음이 설레이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많은 짐을 옮기는 이사에 아가씨 혼자 일을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오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것 같아서였다. 이 뒷부분의 느낌은 상당히 강하고 뚜렸했다. 그 아가씨가 마음에 들었다. 또 마음은 도와주고 같이 있고 싶었는데, 정말 강하게 그랬는데, 한편으로는 망설였다. 혹시 시간 낭비, 노력 낭비 하는 것은 아닐까. 대충 꿈의 내용은 이렇다.

이 꿈에서 "욕구 충족"이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다분히 실생활에서의 사건들이 꿈에서 변형되어,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 같다.
어제 저녁에 국수를 먹었다. 엄마가 만든 그 물김치에 국수를 말아서 먹었는데, 그 김치가 꿈에 나왔다. 하지만 그 김치에 대한 별다른 인상은 없다.
아가씨는 아마도 그 사람이 아닐까 싶다. 전화를 여러번 했는데, 받지 않아서 아쉬운 감정이 남아있었던 탓에 꿈에 나타난 것 같기도 하고, 요 얼마간 나의 주의를 많이 끌고 있는 사람인 탓이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마음에 두고 있다는 점이 비슷한 점이다. 부유해 보인다는 것은 내가 자주 하는 농담이 꿈에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전화 요금이 20여 만원 나왔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도 썼다는 생각을 하고, 속으로 농담삼아, '훗, 갑부...'라고 했는데, 그것이 꿈에 나타난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망설임도 이 꿈에 나타나 있는 것 같다. 이유는 좀 다르게 표현되어있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꿈에서 결론이 없다. 그 아가씨를 도와주고 함께 있을 것인지, 지나쳐 버릴 것인지 결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본다면 실생활에서의 결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꿈속에서 잘 된다면, 실생활에서도 잘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이 개연성이 있는가는 둘째로 치고.
뒷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꿈이,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들이 어떤 것인지 한번 정리할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