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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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필름을 찾았다. 한 장(章)은 들어있는 그 필름. 그 필름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것처럼 기뻤다. '그래, 바로 이 필름이지!' 검정 필름 통에 들어있었지만, 이미 검정 필름 통을 보는 순간 그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정말 갈구(渴求)하였던 것인데, 그것을 이제야 찾게 되다니. 아무렴 어떠랴, 이미 찾았는데.

현상(現像)을 했다. 인화(印畫)는 하지 않았다. 현상한 필름을 빛에 비추어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장(章)마다 들어있는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갖고 싶었지만, 도대체 한 장도 없는 그 모습. 헌데, 그 필름에는 그 모습, 한 장이 들어있다. 그 한 장을 인화하고 싶다. 그리고 그 모습을 두고 두고 여러 번 탐닉(耽溺)하고 싶다. 그렇게 하여 아쉬움을 점점 더 강하게 느끼고 마음을 잃고 싶다. 자신(自身)을 잃고 다른 물건에 집착(執着)하여 모든 것을 잊고 싶다. 또 그렇게 하여 마음을 모두 읽고 강한 슬픔에 빠지고 싶다. 아무래도 술을 마시고 싶은 것인가? 아무래도 시간을 버리고 싶은 것인가? 아무래도 몽상(夢想)에 빠지고 싶은 것인가?

자신(自信)이 없다. 그 필름을 인화해서 그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떨까? 어떤 정서를 느낄까? 그 것에 대한 정서는 바로 두려움이다. 필름을 찾았을 때, 분명히 기뻤다(혹은 기뻤다고 지금 생각한다.). 사진을 볼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있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런 정서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다.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 감각, 정서에 집중해보자.

http://weblog.youre.space//vergence/2004/07/0000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