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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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일요일 이틀간 집안에만 있었다. 귀찮은 탓에 머리를 감지 않았다. 낮에 밖에 나가려고 머리를 감는데, 기름진 머리에 물을 묻히고 머리카락 사이로 물이 스며들기를 잠시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뒤통수 부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약간 미끌미끌하고 끈적한, 기름진, 그리고 물이 스며든, 물이 스며들어 머리에 바짝 붙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느끼자니, 마치 머리에 피가 나서 머리카락에 흥건하게 맺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그랬다, 피처럼 뜨거운 느낌은 없었지만.
어릴 적 뒤통수 피부가 찢어져서 피가 났을 때에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피가 가진 점성(粘性) 때문에 피 묻은 손을 살짝 문질러 보면 미끌미끌하고 끈적끈적하다. 그리고 피가 뜨겁다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사실 몸에서 나는 피는 고작 섭씨 36.5도 내외일 것인데, 딱히 그 온도의 피는 대단히 뜨겁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피가 머리카락 사이에 스며들면, 머리를 움직일 때에 머리카락의 각 가닥의 끝에서 끝까지 느껴지는 아주 미묘한 느낌, 그 느낌에서 머리 전체가 감싸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빨리 감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아무래도 그런 느낌을 받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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