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고양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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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1924년)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요 며칠간 비가 오긴 했지만, 그런대로 봄 분위기가 났다. 이번 해는 폭설부터 시작해서 늦은 봄에, 늦은 비... 날씨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봄은 왔다.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시가 떠올랐다. 내가 저 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예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잊었다고 하기 보다는, 나의 의식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할까. 어쨌든, 지금 다시 저 시를 생각한다. '그래, 봄은 고양이다.' 털이 가볍고 부드러운, 그리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고양이를 보면, 보는 마음도 둥글둥글해 지는 것 같다. 봄 날씨에서 꽃가루, 매연, 황사를 빼면(다시 말해 예전의 조용했던 봄의 기억으로) 봄은 정말 좋다. 나른한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고, 졸려서 낮잠을 자도 좋고, 따뜻한 바람을 느끼며 산에 올라도 좋다.

저 시를 처음 보았을 때가 기억난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한참 문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때였다. 노력해서 시도 여럿 읽었고, 특히 근대 소설을 많이 읽었던 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봄, 잔인한 사월을 처음 맞았던 때에 묘한 연(緣)이었을까, 저 시를 보게 되었다. 좀처럼 시를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시를 보면서 그 모습뿐만 아니라 글자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촉각과 다른 복합적인 느낌을 충분히 느껴본 것은 아마 그 때였던 것 같다.
그 전에는 아마도 거의 논설문만 읽었던 것 같다. 가끔 수필 정도. 그러다가 시도 읽게 되고, 소설도 읽게 되었다. 사실 양으로 보면 더 많이 읽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노력해서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느끼려고 시도하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그제서야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그 때에 썼던 시, 소설들이 기억난다. 얼마 많이 쓰지 않았으니 더욱 그것들이 기억난다. 공책과 원고지가 어디 있을텐데, 나중에 여유로워지면 찾아봐야지. 시간이 많이 흘러서 다시 돌아보면 참 싱그러운 느낌이 들까?

http://weblog.youre.space//vergence/2004/05/0000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