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심리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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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실습 수시 고사를 보았다. 어제 공부할 때에는 그다지 자신감이 없었는데, 아침에 시험 보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보다 준비 안한 사람도 많이 있어서. 하지만 나는 글쓰기를 잘 못하지 않는가. 하하 어차피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시험 문제도 내가 아는 것들이 나왔고, 적당히 잘 쓴 것 같다. 점수야 나와봐야 알겠지만.

실존주의적인 심리 상담이 어떤 것인지 잘 이해를 못하고 있었는데, 시험 공부하면서 그것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실존주의적인 심리 상담이 철학에서의 실존주의를 가져다 쓰고 있지만, 실존주의적인 심리 상담과 철학에서의 실존주의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하기야 철학에서도 실존주의가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데... 이전에 대충 실존주의에 대해서 공부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때에는 실존주의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일관된 개념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때에 공부했던 것이 지금 이해에 도움을 준 것 같다. 시간 되면 다시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실존의 문제에 대한 고찰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실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 실존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띈다. 사람들의 글에서, 말에서, 행동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실존에 대한 지식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치를 바탕으로 한 존재, 과거가 아닌, 이 시간의 존재(이 시간이라는 것은, 곧 이 공간이라는 뜻을 포함),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존재가 실존이다. 인간은 자기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은 이전의 인식하지 못했던 상태로 회복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인식하지 않고 무지할 경우, 부분적 사망감, 기만적 만족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식을 할 때에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실존으로서 인간은 자유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고, 좋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다. 시험에 대비해서 공부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스스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책임을 가진다. 이러한 책임에서 회피할 경우 불안을 느끼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현재 모습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거나 주체적인 역할을 남에게 넘기는 것들이 이런 회피이다.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것은 다시 말해 아무 것도 될 수 없는 위험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런 것에서 부담을 갖게 된다.
실존적 불안은 이러한 불안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지 알지 못하는 불안, 이것은 신경증적 불안과 다른 것이다. 이런 실존적 불안은 인간이 갖는 당연한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삶이 유한하며 그 기간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열정을 갖게 된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한다. 의미가 없어 공허함을 참지 못하기에 의미를 찾고, 스스로 창조한다. 무의미하게 살아 갈 수 있지만, 그것은 껍데기로 살아가는 것이다. 실존적 신경증은 이럴 때에 나타난다. 이전의 낡은 가치관은 버리고, 새로운 창조적인 가치관을 가져야한다.
인간은 정체감을 가지며, 그것을 바탕으로 대인관계를 하게된다. 존재는 자기 스스로 정체성을 가져야지, 타인으로 자기를 찾는 것은 미숙한 행위다. 정체성을 가지고 대인관계를 형성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는 다음과 같다. 존재에의 용기-무의미의 두려움을 인정, 단독의 경험, 나의 의미를 스스로 찾는 것, 관계에서 구하는 것이 아님, 관계의 겅험-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됨, 정체감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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