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청 웃긴거 - 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

이거 완전 웃긴다. ㅋㅋㅋㅋ
원래 http://mirrorzine.kr/ 여기 있는 글인데, 트래픽 제한 있는지 자꾸 접속이 안 되네.
계속 접속 안 될 것 같아서 내용 복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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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공간 도약 항법의 개발

금요일 점심 때였다. 유성 기술의 김 박사는 연구 과제
결과 보고서의 “요약서” 결론 부분을 쓰고 있었다.
“본 연구의 초공간 도약 항법을 적용하면 이론적으로
1MWh의 동력으로 100kg의 질량을 1광월 거리
이동시키는 데 2.2초의 준비 시간이 소요되며, 실패
확률은 2천분의 1 이하로 관리 가능하다.”
그런데 그때 마침 이 팀장이 지나가다가 김 박사에게
말했다.
“김 박사, 초공간 도약 항법 보고서 다 돼가죠? 그거 우리
회사에서 다음 세대 먹거리 사업으로 정말 신경 많이
쓰는 거니까, 가능하면 미리미리 보고서 끝냅시다.”
김 박사가 물었다.
“팀장님, 그런데 이거 아직 보고서 제출 마감까지 삼
주일은 더 남았는데, 굳이 지금 끝낼 필요 있을까요?”
“이거 사업 발주 낸 도전적 국가 기술 연구소에서 관심
많은 사업이니까 가능하면 보고서 되는대로 빨리 달라고
했어요. 가능하면 맞춰주자고요. 이거 잘 되면 정말 우리
회사가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거니까. 혹시 모르지, 김
박사는 노벨상도 탈 수 있을지.”
이 팀장은 그게 재미난 농담이라는 것처럼 웃었다. 김
박사는 전혀 웃기지 않았지만 그냥 반사적으로 따라서
웃는 소리를 흉내냈다. 이 팀장이 말했다.
“이게 정말로 사람을 다른 별로 보내 줄 수 있는
기술이잖아. 몇 광년 떨어진 별에도 사람을 보낼 수 있는
거였잖아요. 이거만 한 번 잘 되기만 하면 게임 끝나는
거지. 결과도 좋았다면서요? 업타임 다운타임 합해서 3
초도 안 걸렸다면서?”
“2.2초 밖에 안 나왔습니다.”
“끝내주네. 이거 내용은 딱 좋으니까, 얘네들 비위만 잘
맞춰주면 분명히 내년에 실용화 사업도 딸 수 있을
거라고. 실용화 사업만 되면, 진짜... 노벨상이 대수야?
역사에 이름이 남는 거지. 그러면 우리 기술로 우주선을
진짜 보낼 수 있을 거고. 다른 별에 외계인 만나러도 갈 수
있는 거지. 보고서 내용도 거의 끝났잖아요?”
“예, 지금 내용은 다 썼고요. 마지막으로 좀 다듬고
있습니다.”
“잘 됐네. 그러면 김 박사, 어지간하면 그냥 다 다듬어서
이번주에 그냥 보내고 손 씻읍시다. 이거 연구한다고 김
박사 엄청 고생했잖아. 이번에 손 털고 좀 쉬어야지. 다
끝내면 한 2, 3주 휴가 내세요. 그리고 어디 가서 푹 쉬다
오라고요.”
김 박사는 그 말을 듣고 말 자체는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다만, 보고서 전체 내용이 4261페이지여서 그것을
다듬는다는 것만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
박사는 이번 연구를 하면서 고생하는 데는 익숙해져
있었고, 이 팀장의 말 대로 이제 막 끝이 보이니 얼른 빨리
마무리 짓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김 박사는 다음날 새벽 1시 20분까지 열심히
보고서를 다듬은 끝에 드디어 보고서를 완성해서, 도전적
국가 기술 연구소에 보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김 박사가 작성한 보고서는 당시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도전적 국가 기술 연구소의 이메일 서버로
전송되어 들어 갔다. 김 박사가 몸살이 난 몸을 추스리며
토요일, 금요일을 집에서 헤매는 동안 그 보고서는
고요히 서버 속에 묵어 있었다.
월요일이 되자, 도전적 국가 기술 연구소의 우주 연구
사업팀, 박 과장은 이 보고서를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유성 기술과 YS 엔지니어링 두 군데 회사에 같은
내용으로 연구 과제를 맡겼는데, 유성 기술은 벌써 다
했다고 보고서를 써 올렸다니, 참 빠르다고 생각했다. YS
엔지니어링은 아직 결과 계산 표 만드는 것도 다 못
끝냈다고 했는데. 박 과장은 얼른 그 보고서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월요일에는 주간 팀원 회의와 팀장 회의 자료
준비와 월초 회식이 있어서 그 준비로 시간이 없었다. 박
과장은 월요일 퇴근이 가까워 와서야, 보고서를 보았다.
박 과장은 보고서 두 번째
페이지의 요약서 결론 부분을 보았다.
“본 연구의 초공간 도약 항법을 적용하면 이론적으로
1MWh의 동력으로 100kg의 질량을 1광월 거리
이동시키는 데 2.2초의 준비 시간이 소요되며, 실패
확률은 2천분의 1 이하로 관리 가능하다.”
그 말을 보는 순간, 박 과장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확 치미는 느낌이 들었다. “아휴-”하는
소리를 내며 박 과장은 긴 한숨 소리를 냈다. 흥분한 박
과장은 바로 유성 기술의 김 박사에게 전화를 했다.
“김 박사님? 저 도연 우연팀의 박 과장인데요.”
“네? 우연팀이요?”
박 과장은 김 박사에게 “도연”이라고 줄여서 말하는 것은
“도전적 국가 기술 연구소”를 뜻하는 것이고,
“우연팀”이라는 것은 우주 연구 사업팀을 줄여서 말하는
것임을 설명하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다. 그 설명을
마치자 김 박사의 목소리는 확실히 좀 더 긴장 되고 더욱
굽실거리는 말투로 바뀌었다.
박 과장은 김 박사에게 연구하느라 수고했다고 하는
형식적인 인사치레의 말을 조금 더 나누었다. 연구하느라
수고 했다는 것은 진심이었지만 말투에 그런 정감은 이미
완전히 빠져 있었다.
박 과장이 본론을 이야기했다.
“김 박사님, 고생하신 거 두고 이런 말씀 드리는 거 정말
죄송한데요. 오늘 제가 싫은 소리 좀 하겠습니다.”
김 박사는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박 과장의 말은
이어졌다.
“우선 이번 정부 들어서 이해하기 쉬운 보고서
지침이라는 거 나온 거 아시죠? 그거 중요하다고 저희가
말씀 드린 적 있죠?”
“예.”
“그런데, 이거 보세요. 2페이지 요약서 결론에 보면, 1하고
엠 더블유 에이치. 이런 게 왜 보이죠?”
“아, 잠시만요. 저도 보고서 열어서 보면서 말씀드릴게요.
아, 잠깐만요. 이게 파일이 커서 열리는데 좀 오래 걸리네.
열려라. 열려라...”
박 과장은 아무 말 없이 김 박사가 파일을 여는 것을
기다렸다. 김 박사는 아무 말 없는 박 과장이 점점 더
분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초조했다.
“아, 열렸네요. 엠 더블유 에이치... 아, 그건
메가와트시라고 그냥 에너지 단위입니다.”
“아니, 제가 엠 더블유 에이치가 메가와트시라는 거를
모른다는 게 아니고요. 그게 영어라고요. 쉬운 보고서
지침에서는 가능하면 영어는 쓰지 말고 쉬운 우리말로
하라고 돼 있는 거, 아시잖아요? 그거 교육도 받으셨죠?”
“예, 그런데요. MWh는 영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냥 단위니까요.”
“김 박사님. 제가 지금 김 박사님하고 뭔가 테크니컬한
디스커션을 하자고 이런 통화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김 박사님 말이 맞을 수 있어요. 아마 맞겠죠.
그런데, 김 박사님, 이게 보고서라는 것은 인상이
있잖습니까. 딱 처음 봤을 때, 엠, 더블유, 또 뭐야, 응
에이치, 이런 알파벳이 떡하니 제일 중요한 요약서
결론부에 있는 걸 보면, ‘아, 얘네 뭐야, 영어 쓰네?’이런
느낌이 무심코 든다고요. 과학기술부에 계신분 들이
테크니컬한 걸 하나하나 일일히 따져서 보지는 않잖아요.
그런 느낌이 사실 중요한 거 거든요. 김 박사님, 연구
보고서 전에도 써 보셨죠? 이거 처음 쓰는 보고서도
아니시면 어느 정도 이런 거 맞춰야 하는 건 아시지
않나요?”
박 과장의 이야기는 수 분 동안 더 이어졌지만, 하여튼
결론은 알파벳을 쓰지 말고 그 부분을 고쳐 달라는
것이었다.
김 박사는 결국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 번 곁들이며
통화를 마쳤다. 결국 김 박사는 MWh를 한국어로
번역하기로 했다.
“본 연구의 초공간 도약 항법을 적용하면 이론적으로
백만 와트 시의 동력으로 100kg의 질량을 1광월 거리
이동시키는 데 2.2초의 준비 시간이 소요되며, 실패
확률은 2천분의 1 이하로 관리 가능하다.”
그런데 그렇게 쓰고 보니, kg라는 말도 눈에 거슬렸다.
k와 g도 분명 알파벳이 아닐까? kg를 그대로 둔 채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면, 박 과장은 분명히 아직도
알파벳이 보인다는 점 때문에 또 흥분할 지도 모른다.
자신을 일부러 열 받고 짜증나게 하려고 kg는 그대로
놔뒀다는 생각을 박 과장이 하게 되면, 다른 생각은
하지도 않고 벌컥 또 전화를 할 것이다.
결국 김 박사는 kg도 고치기로 했다. 처음에는 “킬로
그램”이라고 썼다가, 그렇게 쓰면 메가 와트를 백만
와트라고 쓴 것과 맞아 떨어지지도 않는 것 같아서,
이렇게 고쳤다.
“본 연구의 초공간 도약 항법을 적용하면 이론적으로
백만 와트 시의 동력으로 십만 그램의 질량을 1광월 거리
이동시키는 데 2.2초의 준비 시간이 소요되며, 실패
확률은 2천분의 1 이하로 관리 가능하다.”
그렇게 고치고 보니, 요약서의 결론 부분은 연구 내용
본문의 실험 결과, 결론, 중간 요약, 개조식 정리, 표 정리,
별도의 “심플 액셀 파일”이라는 요약 파일과 정확히
용어까지 맞아 떨어져야만 한다는 규정도 기억이 났다.
김 박사는 요약서 결론 부분과 맞아 떨어져야 하는
내용을 찾아서 그 내용도 모두 다시 고쳤다. 4261페이지
짜리 보고서를 뒤적거리며 맞춰야 하는 부분을 고치자니,
제법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새롭게 고친 보고서를 보내고 다시 만 하루가
지났다.
박 과장은 김 박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김 박사님, 수정하신다고 고생은 참 많이 하신 것
같은데요. 제가 딱 말씀 드린 그것 하나만, 딱 말 한
마디만 고쳐져 있네요.”
김 박사는 kg까지 고쳤으니 최소한 두 마디고, 그걸
위해서 보고서 전체를 다 뒤졌으니 훨씬 더 많이
고친거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가능한한
공손하고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어디를 더 고치면 좋을까요?”
“아니, 김 박사님, 그렇게 나오시면 곤란하죠.”
“예?”
“지금 제 말에 기분 나쁘시다는 것은, 제가 이해는
하겠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아주 노골적으로
싸우자고 나오시면 일이 되겠습니까.”
김 박사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어질어질해졌다. 도전적
국가 기술 연구소 담당자를 화나게 했다. 도연 담당자를
화나게 했다. 큰일 났다. 큰일 났다.
“아닙니다. 과장님, 전혀 아니고요. 제가 전화 통화에 좀
서툴러서 뭔가 뜻이 잘못 전달 된 거 같은데...”
박 과장은 김 박사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김 박사님, ‘어디를 더 고치면 좋을까요’라니요? 그게 말
입니까? 김 박사님이 하신 연구고, 김 박사님이 제일 잘
아시는 분야인데, 그걸 제가 어딜 어떻게 고치라고
어떻게 다 일일히 말씀을 해 드립니까? 무슨
초등학생이에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짜증난다, 더 일
하기 싫다, 네 마음대로 지껄여 봐라, 니가 시키는 그거,
딱 그거는 마지 못해 해줄게, 그런 뜻 밖에 더 됩니까?”
김 박사는 “아닙니다” “절대 그런 뜻 아니고요” 같은 말을
넣으며 중간에 잘리는 대답을 몇 번 더 늘어 놓았다.
박 과장이 이야기했다.
“제가 일단 쉽게, 이해하기 쉽게 써 달라고 했죠? 이게
물론 테크니컬 뎁스가 있는 연구니까, 모든 내용을 다
쉽게 써 달라는 건 아니에요. 저도 그건 이해해요. 그런데,
최소한도로 요약서 결론 내용은 좀 쉽게 해 달라는
거에요. 쉽게요. 정말 쉽게. 아주 쉽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요.”
“예.”
“우선 첫 머리부터가 그렇잖아요. ‘본 연구의 초공간 도약
항법을 적용하면’, 이런 건 딱 딱딱한 옛날 문어체 보고서
말투잖아요. 요즘 과기부에서 원하는 것은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 소통력이 있는 보고서를 원하는 거 거든요.
아시죠? 그런데 첫 머리부터 이러면 이상하다고요.
극단적으로 왜, 요즘 UCC라고 올라오는 유튜브 영상이나
블로그글 같은 그런 식으로 써도 안 될 거까지는 없어요.
그런 거 아시잖아요?”
그러면서 박 과장은 김 박사에게 과기부에서 참고하라고
알려 준 인터넷 동영상 링크와 블로그 글 링크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정말로 쉬운 말”은
무엇인지 감을 한 번 가져 보라고 했다.
김 박사는 전화 통화를 마치고 그 링크들을 열어 보았다.
15분 동안 멍하니 영상을 지켜보니, 그것은 베이킹
소다에 식초를 부어서 무슨 얼룩을 지우는 법을 설명한
글과 영상이었다. 확실히 어렵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초공간 도약 항법을 설명하는
방식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 박사는 고민 끝에 이 팀장에게 술을 한 잔 사달라고 한
다음, 소주 넉 잔을 마시고 나서 이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 팀장은,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냥 마음을 확 비우고, 그냥 고쳐달라는 대로, 말한
부분만 고치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술이 깨고 보니, 김
박사 생각에도 이 팀장이 말한 방법 이외에는 별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김 박사가 다시 수정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난 겨울 연구한 초공간 도약 항법을 썼더니 백만 와트
시의 동력으로 십만 그램의 질량을 1광월 거리
이동시키는 데 2.2초의 준비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론 계산임) 실패 확률은 2천분의 1 이하로
맞출 수 있습니다.”
김 박사가 수정한 내용을 박 과장은 새로 받았다. 수정된
보고서를 보고, 이제 그래도 들이 밀어 볼만한 수준은
되었다고 생각했다. 박 과장은 유성 기술의 보고서를
과학기술부의 기초과학연구실 최 담당에게 보냈다.
“제발, 제발, 제발, 한 번에 통과 되라.”
박 과장은 이메일을 보내는 버튼을 클릭하기 전에, 두
손을 모으고 그렇게 기도를 하며 주문을 외었다.
이튿날이 다 지나도록 이메일에 회신이 없자, 박 과장은
한 번에 보고서가 통과된 줄 알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사실 그날은 과학기술부 체육대회 날이라서 업무를 안
했던 것 뿐이었다. 박 과장의 기도를 들어 줄 곳은 세상에
없었던 것이다.
과학기술부의 최 담당은 그 다음 날 저녁 때, 도전적 국가
기술 연구소의 박 과장에게 전화를 했다.
“박 과장님, 과기부 최 담당입니다.”
“어휴, 최 담당님, 안녕하세요. 정말 오래간만에 목소리
듣습니다. 잘 지내시죠? 하하”
박 과장은 가능한한 “하하”라는 의미 없는 웃음 소리가
친근하게 들리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보통 메아리처럼
돌아오기 마련인 상대방의 비슷한 웃음 소리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최 담당이 말했다.
“저녁 시간이고 곧 퇴근도 하시고 하셔야 하니까, 제가
바로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보고서에서 2페이지
요약서 결론 부분있죠? 제가 일단 그것만 한 번 봤는데
수정 사항이 좀 있어요.”
“아, 예,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저도 제 컴퓨터에서 파일
한번 열어 보겠습니다.”
박 과장은 컴퓨터에서 보고서 파일을 열려고 했다.
파일의 크기가 크기 때문인지 열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 이게 열리는데 시간이 좀 걸리네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지금 거의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 절반
열었고요. 아... 지금 바는 100%까지 찼는데, 아직 화면이
안 나왔네요. 잠깐만요.”
박 과장은 최 담당의 아무 소리 없는 침묵을 들으며,
기다리는 동안 최 담당이 더 짜증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했다.
“아, 예, 다 열렸습니다.”
“박 과장님, 거기 내용 보시면 괄호하고 ‘(이론
계산임)’이라는 말이 있고 실패 확률이 있다고 뒤에
덧붙여져 있잖아요?”
“예, 맞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예?”
“그 말 뜻이 뭐냐고요.”
“아, 그거는 이 연구가 실제로 우주선을 만들어서 실험을
해 본 연구는 아니고요, 이론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만들고 시뮬레이션으로 검증만 해 봤다는 뜻이고요.
이론상 봤을 때 오차 범위가 있으니까, 계산한 결과대로
안 나올 가능성도 있다, 뭐 이런 이야기인데요.”
“아니, 그러니까, 핵심만 말씀해 보세요. 핵심이 뭐에요?”
“말그대로 이 연구가 이론 연구라는거죠.”
“그건 그냥 거기 쓰여 있는 말을 그대로 읽은 거잖아요.
제가 지금 한글을 못 읽어서 박 과장님께 읽어 달라고
하는 건 아니고요.”
최 담당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박 과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니오. 아뇨. 아휴, 최 담당님 죄송합니다. 제가 이거
전화로만 말씀드리려니까 설명이 좀 어려워서요.”
“그러니까, 이게 의미를 따져 보면, 우주선이 날아 가는
원리에 대한 연구이기는 한데, 실제 우주선을 만들어서
실험해 본 연구는 아니다, 그런 뜻이 잖아요?”
“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그렇게 그대로 쓰셔야죠. 지금 보면,
괄호하고 ‘(이론 계산임)’ 그 다음에 실패확률 어쩌고
저쩌고...이건 아니죠. 이런 말은 요즘 보고서에서 쓰는
말이 아니에요.”
“예, 죄송합니다.”
“보고서 이렇게 만들면 큰일 납니다. 요즘, 과기부에서
제일 신경 쓰는 게 연구의 정직성과 성실성이라고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하면 실패할 수도 있죠.
실패 자체는 좋아요. 그건 과기부에서도 얼마든지
인정하겠다 이거에요. 연구가 실패할 수도 있어요. 차라리
그건 괜찮아요. 그게 오히려 그만큼 어려운 도전을
했다는 거니까 오히려 좀 좋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이렇게 괜히 ‘이론 연구’ ‘확률’ 이런 말 써서, 성공한 척
위장하려는 연구, 성과를 부풀리는 연구, 이런 게
문제라고요. 실패한 연구 성과 부풀려서 보고서 억지로
밀어 넣은 거 감사원에서 요즘 찾아 다닌다고 난리난 거
아시죠? 그거 잘못 걸리면 큰일나요.”
“예, 제가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딱 정확하게 결과만 쓰자고요. 구구하게 괄호치고 뭐
실패 확률 어쩌고 하는 말 곁들이고 이런 건 다 없애고요.
그냥 100% 성공이 아니면 실패다, 실패할 수도 있다.
이렇게 딱 정직하게 쓰고요. 아시겠죠?”
“예, 알겠습니다. 그대로 수정하겠습니다.”
최 담당은 어제 체육 대회 이후로 이어진 술자리의
숙취가 그때 껏 남아 있었으므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거리가 깔끔하게 마무리 되는 것이 없으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최 담당은 한숨을 한번 길게
쉬었다. 그리고 다시 박 과장에게 말했다.
“이거 수정할 시간은 있어요?”
“실제로 연구한 업체들한테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연구
마감보다 1주일 더 먼저가 마감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시간은 넉넉합니다.”
“보고서 먼저 들어온 유성 기술 말고 다른 업체는요?”
“YS 엔지니어링이라는덴데요. 거기는 아직도 보고서
작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오늘 전화해서 일정
맞추도록 챙기겠습니다.”
“예.”
최 담당은 “예”를 길게 발음했다. 그 발음이 한탄하는
것처럼 들려서 박 과장은 좀 더 굽실거리는 말로 최
담당을 어떻게든 위로하려고 애썼다.
최 담당이 또 이야기했다.
“꼭 이거 일정 내에 다 수정되도록 잘 챙기세요. 이거
연구 결과 가지고 적용 연구, 실용 연구 시작하면 거기에
예산 엄청 많이 들어가는 것 아시죠? 항성간 우주선 개발
사업 굵기 큰 거 아시잖아요. 이거는 청와대에서도 관심
많으신 사업이고. 되게 큰 사업이고 중요하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사람 좋게 하지 마시고, 욕 좀 먹을 각오
하시고 닥달하듯이 하고. 한 밤에라도 연락하고 해서라도
일정지키셔야 합니다. 박 과장님이 이번에는 정말
이번만큼은 좀 제대로 역할 해주세요.”
최 담당의 마지막 지시였다.
전화 통화를 마친 박 과장은 유성 기술에 전화를 걸었다.
퇴근 시간이 지난 후라 김 박사는 자리에 없었다. 김
박사는 주말을 괴롭혔던 몸살이 다시 도져서 병원을 찾은
상태였다. 박 과장은 몇 차례 피곤한 통화를 거친 끝에 이
팀장으로부터 김 박사의 휴대 전화 번호를 알아냈다.
그 시각, 김 박사는 집에서 샤워를 막 마치고 옷을 입으며
침대에 드러 누우려고 하고 있었다. 그 때 휴대 전화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김 박사님? 도연 우연팀입니다. 통화 가능해요?”
박 과장의 목소리였다. 김 박사는 전화 통화가 잘 안된
것처럼 위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생 고생해서 사업
끝까지 왔는데 보고서 문구 몇 자 때문에 결과가 안
좋으면 그게 무슨 허무한 꼴인가 싶었다. 이 사업만 잘
트이면 드디어 회사가 잘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많은
회사 동료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도 떠올랐다.
“아, 예,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박 과장님.”
김 박사는 밝은 목소리를 내어 보았다.
박 과장은 자기 컴퓨터 화면에서 보고서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보고 있는 것은 요약서의 결론 부분이었다.
“지난 겨울 연구한 초공간 도약 항법을 썼더니 백만 와트
시의 동력으로 십만 그램의 질량을 1광월 거리
이동시키는 데 2.2초의 준비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론 계산임) 실패 확률은 2천분의 1 이하로
맞출 수 있습니다.”
박 과장은 최 담당이 말해 준 것을 메모해 둔 것을 넘겨
보았다. 박 과장이 김 박사에게 말했다.
“김 박사님, 과기부에서는 아직까지도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 같네요. 이거 어떡하면 좋습니까?”
“어떤 부분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저도 김 박사님 힘든 거는 아는데. 이거 별것도 아닌
말장난하는 거 때문에 일이 자꾸 이리 갔다가 저리로
돌아 오고, 이리 갔다가 또 돌아오고 하니까, 많이
힘드네요. 저도 힘들고, 김 박사님도 힘들고.”
“죄송합니다.”
“아뇨. 뭐 김 박사님도 최선을 다하시는 거 겠죠.”
“수정 사항 말씀해 주시면 최대한 빨리 고쳐 보겠습니다.”
“예.”
박 과장은 잠깐 뜸을 들였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과기부에서 말하는 게 뭐냐면, 일단 괄호는 쓰지 말래요.
거기에 있는 말은 빼고. 그리고 들어가야 한다고 한 말이
뭐냐면, ‘우주선 연구지만 실제 우주선을 만들어 본
연구는 아니다’ 그리고 ‘실패할 수도 있다’ 이렇게만요.
그리고 실패 확률이라는 말도 절대 쓰지 말라고 하네요.”
김 박사는 박 과장의 그 말을 듣고 “예” “예”라는 답은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보고서를 그렇게 바꿀 수 있을
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시간 있잖아요. 그나마 미리미리 보고서를 주셔서
이렇게 딱 입맛에 맞게 수정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그건
좋은 것 아니겠어요?”
박 과장의 그 말을 듣고, 김 박사는 어떻게든
마감일까지는 제대로 맞춰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리저리 문장을 고쳐 봐도, 도저히 어떻게 말을
만들어야 하는 지 좋은 수가 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이 팀장이,
“그냥 마음을 확 비워. 좀 이상해져도 할 수 없어. 그냥
아무렇게나 고쳐달라는 대로만 고쳐줘. 이거 보고서
제대로 통과 안 되면 아무리 연구 열심히 하고 결과
좋았어도 그냥 땡이잖아.”
라고 몇 차례 말했다. 김 박사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요약서의 결론 부분에 손을 댔다.
그렇게 해서 바꾼 것은 다음과 같았다.
“지난 겨울 우주선에 쓰이는 초공간 도약 항법 연구를
했는데 실제 우주선을 제작해 연구한 것은 아닙니다.
연구 결과, 백만 와트 시의 동력으로 십만 그램의 질량을
1광월 거리 이동시키는 데 2.2초의 준비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수 사례에서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랬더니, 결론 항목에서 지키게 되어 있는
글자수를 조금 넘어 버렸다. 김 박사는 어쩔 수 없이 말을
조금 더 고쳐야 했다.
“지난 겨울 우주선에 쓰이는 초공간 도약 항법 연구를
했는데 실제 우주선을 제작해 연구한 것은 아닙니다.
백만 와트 시로 십만 그램을 1광월 이동시키는 데 2.2초의
준비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하지만, 소수 사례에서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김 박사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체력이 받쳐 주질 않았다. 더 이상 이 보고서의 결론
부분을 수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4천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 곳곳에 연관 되어 있는 다른 대목을 바꾸는 것을
김 박사의 육체가 견뎌내지 못했다.
김 박사는 보고서를 보냈다.
보고서를 받은 박 과장도 아무래도 보고서 내용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의 길이는 더 늘어났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더 줄어든 것 같았다. 이래서 되나
싶었다. 그런데 마침 최 담당이 박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먼저 온 회사 보고서 있죠?”
“유성 기술이요?”
“거기 회사 보고서 수정 다 끝났어요? 제가
말씀드렸던대로?”
“예? 예.”
박 과장은 보고서 수정이 끝났다고 말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박 과장은 보고서를 그대로 최 담당에게 보냈다.
최 담당은 보고서 새 버전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내용은 아직 열어 보지 않았지만, 이번 연구 과제를
총괄하고 있는 정 국장이 오기를 즐겁게 기다리기에는
충분했다. 정 국장은 연구 과제가 마무리될 무렵이 되면
꼬박꼬박 알아 채고 나타나, “이제 몇 주일 후면 끝인데,
어떻게 아직까지 여기까지밖에 진전 안 됐냐?”고
호통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미리 일 주일 빨리 마감 기한을 연구소에 말해 둔 덕택에,
벌써 보고서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최 담당은 연구를
하는 업체 두 곳 중 한 군데라도 일단 끝맺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생각했다.
“이번에 도전적 국가 기술 연구소에서 하고 있던 과제
어떻게 다 돼가요?”
“예. 두 군데 업체 중에 한 군데에서는 보고서까지 끝났고,
나머지 한 군데도 다 돼 갑니다.’
정 국장은 “그게 좀 딜레이 되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예상하고 그 대답이 나오면 바로 뭐라고 기분 나쁜
소리를 쏟아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즉각 다른
대답이 나오자, 당황하며 멈칫거렸다. 정 국장은 오늘은
최 담당 기를 죽일 이야기를 뭐라도 한 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해 어딘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대화가 예상대로 돌아가 기뻐한 최 담당은 이제
연구 사업은 잠깐 미뤄두고 급한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우선 차관의 장관 보고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있었고, 장관의 청와대 보고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 둘 다 6백 페이지짜리 보고서의 내용을 두 줄로
요약해 내야 하는 것이어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
담당은 이 연구와 엮여 있던 여러 연구소들에게
오래간만에 연락해서 몇 시간 동안 통화를 하며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벌써 끝난 지 몇 달이 지난
연구라서 아는 사람을 찾기도, 아는 사람이 그 연구의
세세한 사항을 다시 기억해 내는데도 오래 걸렸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단숨에 흘러 지나갔다. 준비하고
있던 차관의 장관 보고와 장관의 청와대 보고가 갑자기
취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와서야, 최 담당은 다시
여유가 생겼다.
그제서야, 최 담당은 유성 기술 김 박사가 만든 보고서를
다시 보게 되었다.
“지난 겨울 우주선에 쓰이는 초공간 도약 항법 연구를
했는데 실제 우주선을 제작해 연구한 것은 아닙니다.
백만 와트 시로 십만 그램을 1광월 이동시키는 데 2.2초의
준비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하지만, 소수 사례에서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자, 최 담당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최 담당은 즉시 도전적 국가 기술 연구소의 박
과장에게 전화했다.
“박 과장님, 지난번 연구 보고서를 제가 보고 있는데요.
이거 좀 문제가 큰데요?”
“최 담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그렇게 말씀 드렸는데. 야, 제가 뭐 그렇게 아주
어려운 걸 부탁 드렸던 게 아니잖아요? 그냥 최소한 지킬
가이드라인만 팔로우 해 달라고 그렇게 말씀 드린건데.
이게 수정했다고 하셔 놓고 아무것도 된 게 없네요.
아무것도 된 게 없어.”
“예? 최 담당님. 잠시만요. 제가 지금 바로 다시 파일 열어
보겠습니다.”
이번에도 긴 시간 파일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기다려야
했다. 박 과장은 땀이 바짝바짝 났다. 박 과장이 파일을
보고 있다고 말하고는 물었다.
“어느 부분이 문제가 되는 거죠?”
“어느 부분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아무 변화가
없네요. 전반적으로 무슨 이야기하는 지 방향이 안
맞아요. 바쁘신 건 알겠는데, 이것도 중요한 과제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