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18일 대학수학능력 시험 날

1998년 11월 18일 대학수학능력 시험 날은 많이 추웠습니다. 아침에는 맑고 추웠고 오후에는 눈비와 바람 때문에 더 추웠습니다.

시험장으로 가는 동안 머리속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성적이 꽝으로 나오면, 다 집어치고 목수를 해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목수 말입니다.

시험을 대전고등학교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교실마다 천장에 에어콘이 있고, 뒤에는 온풍기가 있더군요. 놀라웠습니다. 대전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옆에 붙어있는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하기를 기대했습니다, 솔직히. 수능시험 날에야 대전고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농담을 했습니다, 불편한 시설에서 공부하고 편한 시설에서 시험봐서 성적이 좋아졌을 거라고, 반대로 제가 다닌 학교로 시험보러 온 학생들은 성적이 안 좋아졌을 거라고요. 남대전고등학교는 그 날도 난로에 탄을 넣고 태웠을 겁니다. 교실은 연기로 자욱하고요. 건물 밖에 있는 화장실에서 덜덜 떠는 학생들의 모습도 여전했을 거고요.

시험이 끝나고 대전 중앙시장 부근의 중고서점으로 갔습니다. 수능시험에 대한 예의 상, 몇 개월 동안 잡지를 보지 않았기에. 맥마당, 매킨토시 컴퓨터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그 잡지를 샀습니다. 과월호 여러권을 가방에 넣고 나오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수능시험이 끝난 것보다 맥마당을 산게 더 좋았습니다. 그러고 집에 가는데, 집에 걸어가려면 20분을 걸어야하는데, 눈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바보 같이. 눈비에 바람까지 다 맞으며 집에 가는 길이 어찌나 춥던지...

대학교에 매킨토시 동아리 맥스페이스에 들어가서도 수능시험 끝나고 맥마당 사러 갔던 이야기를 즐겁게 한 기억도 납니다.

17년 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