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08-23에, 썼지만 보내지 못한 편지
2004-08-23. 정말 힘든 날이었다. 떠난다는 것과 기다린다는 것.
나중에 들었지만, 실제로는 12:30까지 비행기 안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아침에 문자 주고 받고, 전화 통화 했지. 그리고 산에서 11:00 정도에 돌아왔어.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어. 애써 무시하면서 책을 읽었어. 그러면서 전화기를 수십번 살핀 것 같아. 전화벨이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문자 메시지가 온 것 같기도 하고... 전화를 걸어볼까, 문자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내볼까... 혹시 어머니가 받으면 어떻게 하지... 이미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서도 계속 책을 읽었어. 책에 집중이 더 잘 되더라, 이상하게도. 11:30 정도 되니 더 불안해졌어. 12:00에 가까워질 수록 불안함도 강해지고 감정이 복잡해졌어.
가는 날부터 이렇게 힘들면 앞으로 어떻게 버틸까. 차라리 다음 만날 때까지 완전히 잊은 것처럼 지내고, 다음에 만날 때 처음 만난 것처럼 서로 좋아하자고 그러는게 좋았을까하고 생각도 들고.
어느 덧, 12:00. 하늘을 봤는데, 하얬다. 구름이 걷히길 바랐는데... 그래도 아실이 가는 하늘 길은 맑기를 바랐어.
서울엔 날씨가 맑고 구름이 조금 끼었다고 했지. 대전은 밤새 비가 온 탓인지 구름이 많이 끼어있었어. 파란 하늘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비가 온 탓이었는지 공기가 굉장히 맑았어. 대전 저쪽 끝의 산까지 선명하게 보이더라. 이 모습을 아실이도 보면 좋았을텐데... 정말 상쾌했거든.
12:00이 지났다. '갔구나.'
허망감이 몰려왔어. 누구라도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더라고. 아무래도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나갔어.
2년 정도 전에 갑자기 여행 간다고 하고 사라진 사람이 연락을 해서 만났어. 사실은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친구들 당구 치는데 따라가고, 술 마시고 돌아왔어. 당구 구경하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어. 편지가 와 있다고. '그렇지, 편지가 있었지.' 보고 싶어 죽겠는데, 당장 집에 가지 않았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을까.
집에 와서 편지를 보니, 마음이 쓰리네. 조용한 방에서, 혼자 편지를 펼칠 생각을 했지. 그런데 감히 손으로 못 뜯겠더라고. 소중히 열고 싶어서 새 칼을 사왔어. 그리고 열려고 했는데, 그래도 준비가 덜 된 것 같았어. 그리고 차를 끌여 갖고 왔어.
편지 읽다보니 목이 메였어. 읽고 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 '그래,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