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아오는 기차 안에서
- 나 존재, 너를 통하여
- 말: 좋아한다
- 말의 한계, 초월
- 느낌, 마음에서 마음으로
뭐냐, 나는?
돌아가는 기차의 창에 비친 모습을 보며 이렇게 물었다. 대답할 수 없다. 다만 사람 형상을 한 무엇이 앞에 있다.
참 오랜동안 물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외로웠던 탓이었나봐. 도저히 외로워서 나를 찾고 싶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노력할 수록, 다양한 시도를 할 수록 더 공허했어. 상처를 계속 후펴 파는 것보다 더.
이제 이런 물음에 조금은 초연하다. 전에는 외로워서 이런 물음이 절박(切迫)했어. 이제는 외로움이 덜해. 네가 있으니까. 너에게 귀의(歸依)한다. 이 작은 존재(存在)로.
'나'라는 것에 대한 물음에,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형이상학적인 생각도 해보고, 시간과 관련해서 생각도 해보고 민족과 문화와 관련해서도 생각해보고 가족과 관련해서도 생각해보고 윤리와 관련해서도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조금은 헛된 것이 아니었나 싶어.
진작에 '너'와 관련해서 '나'에 대해 생각해 봤어야했던 것인데.
말을 하고 싶다, "좋아한다"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싶어서, 내가 느끼는 것을 충분히 전달하고 싶어서 글을 계속 써. 그런데, 이 빌어먹을 놈의 말이라는 것이 도대체 성기어서 아무리 표현을 해도 모자라. 어쩌면 "좋아한다"라는 말로 너무 너무 부족해서 "사랑한다"라는 말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어. 때때로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마구 써서 무슨 의미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말이야. "좋아한다"는 말이 진짜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써볼게.
말은 한 없이 부족한 것이지만, 그래도 말을 하면 너는 느낄 수 있겠지? 내가 "종아한다"라고 딱 한 마디만 말하더라도, 내가 느끼는 기쁨, 즐거움, 애절함, 애틋함, 아쉬움, 두려움... 그런 것 모두를 너도 느낄 수 있겠지? 혹은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풍부하게 너는 느낄까?
CD player의 리모콘을 들고, 전원을 켜고(power on), 재생(play) 버튼을 누르면, CD가 돌아가고 그 안에서는 이런 저런 복잡한 부품들이 작동을 하고 소리가 나. 너에게 전화를 걸고 "좋아한다"고 말하면, 네 머리 속에서는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들이 터져 나오고 곧 네 심장이 뛰고 그리고 내가 느끼는 것을 너도 느끼겠지. 꼭 마술 주문 같다. "열려라, 참깨"하면 문이 열리는 것처럼.
말, 말로 다 표현 못하더라도 너는 나를 느낄 수 있겠지. 쓰고 보니 가림이 없고, 언뜻 보면 천박하게 느껴질 것 같아. 조금 걱정되네. 부디 솔직하고 투명하다고 생각해줘.